그 사람은 말수가 적었어요. 그저 앉아서 쳐다만 봤죠. 가끔 그림도 그렸고요. 한번은… 우리 둘뿐이었죠. 난 낚시하고 그 사람은 그림 그리고. 그런데 생각만큼 고요하진 않았어요. 그림 그리면서 별 소리를 다 내더라고요. 증기기관처럼 뿜어대질 않나. 그런데 갑자기 침묵이 흘렀죠. 그리곤 더러운 까마귀가 가까이 오니까 아주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더군요. 자기 점심을 먹어도 신경 안 쓰더라고요. 그때 생각했죠. 얼마나 외로우면 고작 도둑 까마귀 때문에 이렇게 행복해할까?
 
/러빙 빈센트

벗이여, 벗이여, 굴욕 속에, 지금도 굴욕 속에 빠져 있노라. 인간은 이 지상에서 너무도 많은 것을 참아야 해, 너무도 많은 불행을! 내가 고작 코냑이나 마시고 방탕을 일삼는 장교 딱지를 단 쌍놈에 불과하다고는 생각지 말아 주렴. 동생아, 나는 거의 오직 이것만을, 이 굴욕에 젖은 사람만을 생각한단다, 다만 내가 지금 거짓말을 하는 게 아니라면 말이다. 제발 지금 내가 거짓말이나 자화자찬을 하는 것이 아니었으면 좋겠어. 이 인간을 생각하는 건 나 자신이 그런 사람이기 때문이야. 

 

   인간이 저열함으로부터 벗어나 

 

   영혼 깊숙이 일어설 수 있으려면, 

 

   고대의 어머니 대지와 

 

   영원히 결합할지어다. 

 

하지만 바로 이게 문제야. 즉, 어떻게 내가 대지와 영원히 결합할 것인가? 나는 대지에 입을 맞추지도 않고 대지의 가슴을 열어젖히지도 않아. 아니, 내가 농사꾼이나 양치기가 될 순 없잖니? 이렇게 앞으로 걸어 나가면서도 내가 악취 나는 치욕 속에 빠진 것인지, 아니면 빛과 기쁨 속에 빠진 것인지를 모르겠어. 바로 이게 불행이라니까, 세상의 모든 것이 수수께끼거든! 방탕한 치욕의 심연 속으로 깊이 빠져들 때면(하긴 나한테는 꼭 이런 일만 있었지.) 나는 언제나 케레스와 인간을 노래한 이 시를 읽곤 했어. 그 덕택에 내가 개과천선했느냐? 절대 아니올시다! 왜냐면 나는 카라마조프니까. 왜냐면, 어차피 심연 속으로 떨어진다면 차라리 머리를 아래로 처박고 발뒤꿈치를 위로 쳐든 채 곤두박질치는 편이 낫고, 그야말로 이렇게 굴욕적인 자세로 추락하는 것이 만족스럽고, 또 나 같은 놈한테는 이것이 아름다운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지. 그러니까 바로 이런 치욕 속에서 허덕이며 나는 갑자기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하는 거야. 내가 빌어먹을 놈이고 천한 놈, 야비한 놈이라고 해도, 설사 그렇다 쳐도 나의 하느님을 휘감고 있는 저 옷자락에 입을 맞추면 또 어떠냐. 그와 바로 동시에 악마의 뒤를 따라간다고 해도 어쨌거나 나는 하느님의 아들이니, 주여, 당신을 사랑하며 이 세상을 존재하게 하고 지탱하게 해 주는 기쁨을 느끼옵나이다. ) 아름다움- 이건 무섭고 섬뜩한 것이야! 무섭다고 하는 건 뭐라고 정의할 수 없기 때문이고, 정의할 수 없다는 건 하느님께서 수수께끼만을 던져주셨기 때문이지. 섬뜩한 건, 아름다움이 무서울 뿐만 아니라 신비로운 것이기도 하다는 사실이야. 거기서 악마가 신과 싸우고, 그 전쟁터가 바로- 사람들의 마음속이지. 하지만 네가 나 같은 놈이라면, 그게 무슨 뜻인지 이해할 텐데. 나는 방탕을 사랑했고, 방탕의 치욕마저 사랑했어. 잔인한 짓을 사랑했지. 그러니 내가 과연 빈대가 아니란 말이냐, 흉악한 버러지가 아니란 말이야? 말했잖아-카라마조프라고! 

 

/카라마조프 가의 형제들

수천 번을 생각해 봤지만 이번에는 꼭 할거야. 왜 항상 빨간 양말과 검은 신발을 신지? 날씨가 흐리고 추워서 점퍼를 입고 왔어. 이 옷은 아주 소중해.  싸구려 옷이지만 그녀가 선물한 거야. 옥상에 웬 돌이지? 날아가지 못하게 한 건가? 이제 나는 거야. 베를린 하늘을 나는 비행기도 언젠가는 떨어져. 춥지만 내 손은 따뜻해. 좋은 징조야. 내 뜻대로 될 거야. 몇 시나 됐지? 해가 지는군. 저쪽이 서쪽이야. 난 항상 동쪽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어. 차표를 한 장 얻었지. 태양을 등 뒤로 하고 별을 왼쪽에서 보며. 얼마나 좋은가… 총총 뛰던 그녀의 작은 발! 춤출 때 예뻤지. 우린 혼자였다. 내 편지를 받았을까? 아직 읽지 말았으면. 베를린은 내게 아무 의미 없어. 하벨이 강인가, 호수인가? 뒤쪽이 붸딩그라면 동쪽은? 전부 동쪽인가? 마음대로 소리쳐라. 나와는 상관없어. 아무것도 생각하기 싫어. 하지만, 왜지? 
 
/베를린 천사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