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 어떤 성스러운 것―단순히 천상적이고 내세적인 것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말 없는 가운데 스스로를 입증하는 것, 이런 묵시적 증명을 통해 자신을 넘어서는 것, 이 모든 내 표상의 중심에는 양이 있곤 했다. 양의 죽음. 당신은 죽어 가는 양을 본 적이 있는가? 그것은 울부짖지도 요동치지도 않는다. 잘린 '목줄기'로 흥건히 피를 쏟아 내면서도 가라앉는 눈꺼풀을 가끔씩 끔뻑거릴 뿐, 그것은 아우성치지 않는다. 알 수 없는 진통과 경련이 이따금 온몸을 덮쳐 올 때도 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양은 생명이 고갈되는 순간까지 네 다리로 버티고자 한다. 그러다가 순식간에 온몸이 무너지고 만다. 대지를 딛고 선 네 발이 힘을 다하는 순간, 그 생명도 육체에서 빠져나가 버린다. 양은 죽는 그 순간까지 땅 위에서, 이 땅을 딛고 선 채, 이 땅에 순응하며 저항하는 것이다. 

 

/정열의 수난